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브니엘학원 사태 (문단 편집) ==== 왜 그런 부지를 선택했을까? ==== [include(틀:무산된 고등교육기관)] 브니엘학원의 모체가 되는 브니엘교회[* 어원은 성경의 지명. 상세는 [[야곱]] 및 [[브니엘고등학교]] 문서 참조.]는 1986년에 기존 소속 교단 이었던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에서 몇몇 교회를 이끌고 '대한예수교장로회(브니엘)'이라는 새로운 교단으로 독립하였다.[* 1998년에 '대한예수교장로회 브니엘 총회'라고 교단명을 바꾸고 조직을 재정비했다. 그리고 이 브니엘 총회의 초대 총회장이 브니엘학원의 설립자이자 당시 이사장이었던 박성기 목사였다.] 브니엘학원도 한때는 [[고신대학교]]와 같은 교단 계열이었으나 교단이 독립하면서 남남이 되었는데[* 그래도 한때는 남남이 되면서 서먹서먹한 사이가 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한때는 한 가족이었던 정이 있었던 것인지 서로 교류를 하기도 하였다.] 교단이 독립한 이상 [[고신대학교]]와는 다른 '''신학대학교'''를 설립해야 목회자를 자체적으로 양성하여 교세를 확장할 수 있었다. 당시는 대학설립준칙주의 이전의 대학설립 준거주의를 따르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의 부지와 수익용 자산 규모를 갖추어야 대학설립 인가를 받을 수 있었는데 정규 신학대를 설립하려면 4년제 학과까지 갖춰야 했다. 목회자 양성을 위해서는 4년제 학부과정(예과)은 상관없이 3년제 신학대학원(본과) 과정만 있으면 되었으나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중반 기준으로 사립대 관련 법률상 대학원을 설립하려면 그 이전에 4년제 학부 과정을 필수로 요구했다. 심지어 비정규학교지만 교육부 인가 학교로 4년제 학사학력이 인정되는 각종학교를 설립하려고 해도 상당히 까다로웠다. 예나 지금이나 미인가 신학교와 정규 인가 신학교는 위상 차이가 크며 정규 신학대 또는 신학대로부터 발전한 종합대학을 갖추었는가의 여부는 교단의 위상을 상징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물론 대학설립준칙주의 이전이기는 했으나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노태우]]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사립대를 추가로 설립인가를 내 주겠다고 공약했고 후보 시절 [[3당 합당]] 이전 [[김영삼]]의 야도로 유명한 부산권의 민심도 잡기 위해 부산권에도 사립대 인가를 여러 개 내 주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므로 브니엘학원 또한 4년제 정규 신학대학 설립을 노려 볼 만했다. 실제로도 노태우 정부는 부산 지역에 임기 내내 사립대 인가를 꽤나 내 줬으나 [[부산가톨릭대학교|부산가대]], [[동서대학교|동서대]], [[부산예술대학교|부산예대]] 정도만 개교할 수 있었다. 브니엘 구 재단 입장에서는 한때는 한 가족이었던 [[고신대학교]]가 신학대학에서 출발하여 1970년대에 [[종합대학]]으로 성장하였고 1980년대에는 신학대학에서 출발한 대학으로써는 이례적으로 [[의과대학]]도 유치하는 크나큰 성공에 힘을 입어서 대학 설립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으나 정규 신학대학을 설립하려면 그에 걸맞는 부지 면적을 갖춰야 하는데 [[토곡]], [[사직동(부산)|사직동]], [[양정동(부산)|양정동]] 같은 기존 후보 부지들은 브니엘 중고교를 운영하기에는 정말 좋았지만 정규 대학 인가를 받기에는 턱없이 좁았다. 또 부산 4학군도 포기하기 싫었으나 그렇다고 구서2동을 택하자니 [[부산외국어대학교|부산외대]]처럼 [[금정산]] [[그린벨트]] 크리티컬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연산동 브니엘학원을 이전하며 마련한 차액으로 정규 4년제 신학대학과 신학대학원을 설립하고 [[그린벨트]]를 어느 정도 피하면서 4학군에 남으려면 결국 현 구서동 부지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더군다나 대학생이나 대학원생 정도 되면 집안 사정이 넉넉하면 직접 승용차를 몰고 등하교하거나[* 특히 당시 대학원생 정도 되면 대부분은 중상류층 이상 집안의 자제들이었기에 집안에서 통학용으로 르망, 엑셀, 프라이드, 스쿠프 같은 소형 승용차 정도는 충분히 사주고도 남는 경우가 상당수였다. 그정도 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시 막 나온 대한민국 최초의 경차인 [[대우 티코]]라는 새로운 선택지도 있었고...] 각종 오토바이라던가 하다못해 택트 같은 50cc 스쿠터[* 고등학생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 비행 청소년으로 보는 경향이 예나 지금이나 강하지만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고 해서 이상하게 보는 경우는 예나 지금이나 거의 없는 편이다. 당시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최상위권에 속했던 부산대학교 학생들 중에도 오토바이로 등하교하는 학생들이 많았다.]로 등하교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교통편 문제에서도 중, 고등학교에 비하면 어느 정도 자유로운 편이기도 하다. 북구 화명동 같은 서부산에서라면 넓은 부지를 확보할 수 있지만 당시 화명동은 상전벽해로 좋은 학군이 된 지금과는 달리 쓰레기 매립장으로 쓰이던 지역으로 학군이 썩 좋지 못한 데다가 지금처럼 좋은 학군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고 게다가 서부산이었던 사상구 분구 이전의 북구는 설립자 박성기의 절친이던 장성만[* 장성만도 본업은 목사였다. 교단이 다르긴 했지만 둘 다 목사 출신 사학재벌인 만큼 친분이 있었다.]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만큼 '''브니엘신학대학'''이 [[장성만]]의 '''[[경남정보대학교|경남전문대학]]'''과 '''[[동서대학교]]'''와 직접적으로 경합을 붙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브니엘학원이 심심하면 천주교 부산교구가 운영하는 지산간호전문대학[* 1998년에 지산대학으로 교명을 교체하더니 2000년 부산가톨릭대학교와 통합했다. 결과적으로 신학과가 없어지면서 지산대학을 부산가대 간판만 씌워 4년제 대학으로 승격시킨 모양새가 되었다.]과 [[부산가톨릭대학교]], [[지산고등학교(부산)|지산고등학교]]를 저격하고 헐뜯으려 해도 경남정보대학교와 동서대학교 만큼은 좋게 소개해 주고 [[브니엘예술고등학교]]의 적지 않은 학생들을 동서대학교로 입학을 추천해 주는 것 또한 그런 이유였다. 당시에는 땅값이 싼 해운대구를 선택할 수도 있었으나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만 해도 해운대구가 허허벌판이었으므로 지금처럼 발전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으며 해운대에 군사시설인 '''[[제53보병사단]], [[제69보병사단]]'''이 자리잡고 있다 보니 군부대 문제로도 브니엘신학대학 설립을 위한 대규모 부지 확보에 제약이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구서동을 비롯한 지금의 금정구 일대는 당시로써는 [[동래구]]에서 이제서야 막 분구된 지역으로 민정당 지지율이 높은 데다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표도 많이 나온 동네이고 [[3당 합당]] 이전에 유일하게 [[민주정의당]] 국회의원([[김진재]])이 당선된 적도 있었다 보니 대학설립을 위해서는 이런 면에서도 유리한 점이 있었다. 결국 4학군과 정규 신학대학을 둘 다 노릴 수 있는 데다 정치적으로도 매우 유리한 현 구서동 부지를 택하고 대학설립준칙주의 시절 이전에 4년제 정규대학 설립허가를 받을 수 있는 11 [[헥타르]] 부지를[* [[부산외국어대학교|부산외대]] 남산동 캠퍼스와 면적이 비슷하다.] 삼성종합물산으로부터 매입해여 일단 브니엘중과 브니엘고를 먼저 이전하고 이후 신학대학을 설립하려고 계획한 듯하다.[* 중고교 면적을 제외해도 [[인서울 대학교]] 중에서 [[광운대학교|광운대]], [[한성대학교|한성대]], [[서경대학교|서경대]] 캠퍼스, 경기권의 [[차의과학대학교]]와 면적이 비슷하며 [[동서대학교|동서대]] 디자인홀, [[부산대학교|부산대]] 항공관, [[계원예술대학교]]처럼 고등학교가 쓰던 건물을 대학이 전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계획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계산을 잘못 한 나머지 진입로 문제로 이것저것 말썽이 생겨 시행사ㆍ시공사 보증[* [[성경]]에도 [[보증#s-2.4|보증]]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구절이 많이 나오는데 결국 [[성경]]대로 하면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결국 지각없는 자들이 될 수밖에 없다. (지각없는 사람이 남의 보증을 선다. - [[성경]] [[잠언]] 17:18(공동번역성서)), (남의 보증을 서면 고생하지만 보증을 꺼리면 안전하다. - [[성경]] [[잠언]] 11:15(공동번역성서)) 결국 정통 보수 기독교 교단을 자처하는 이들이 [[성경]]에서도 금하는 행위를 한 꼴이 된 것이다.]을 서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브니엘중은 구서동과 부곡3동 주민들이라는 복병을 만나 폐교당했으며 어찌어찌 설립한 브니엘예중도 신통찮고 재단도 재정난에 빠진 그 와중에 대학설립 준칙주의가 시행되어 4년제 학부과정 없이 신학대학원만 축소 설립인가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재정난에 빠진 브니엘학원은 관련법이 개정되어 대학설립 준칙주의가 시행되면서 일단 4년제 정규 학부과정을 포기하고 신학대학원만 건지려고 교육부로부터 1996년에 [[대학원대학교]]설립인가를 받아냈지만[[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90500209145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09-05&officeId=00020&pageNo=45&printNo=23302&publishType=00010|#]][* 부산은 대학설립 규제 지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단 대학원대학교를 먼저 설립하고 추후에 4년제 학부를 설립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 와중에 브니엘학원은 부도가 나고 2004년 구니카 시절 정상화 과정에서 브니엘 신학대학원 대학교는 정부의 부실대학 정리 정책에 의해 미개교 상태에서 인가가 취소되었다.[* 지역에 들어오기로 했던 고등교육기관이 인가가 취소되면 지방 농촌 지역에서는 120명 규모라고 해도 마을이 뒤집힐 정도로 정말로 난리가 날 일인데 금정구에서는 기사 정도만 떴을 뿐 금정구민들 대다수의 반응은 무관심이었다. 어차피 금정구 입장에는 당시 [[부산대학교]]도 있고 [[부산가톨릭대학교]]도 있고 [[대동대학교]]도 있는 만큼 120명 규모의 소규모 신학대학원대학교 하나가 날아가는 것에 대해 신경을 쓸 이유가 없었다. 그 정도로 금정구민들 사이에서도 진짜 아오안 취급이었다. 그리고 이 브니엘신학대학원대학교 인가 취소를 구니카 재단 이사장이 이의 없이 받아들이면서 설립자의 역린(설립자인 박성기 목사는 고신교단에서 나온 만큼 신학대를 만들고 싶어했고 결국 자신이 40년간 쌓아온 브니엘학원까지 걸고 신학대에 욕심을 냈었“다. 그런데 정상화 과정에서 인가가 완전히 날아갔으니 격노할 수밖에.)을 제대로 건드렸고 구니카 재단 낙마의 원인이 되었다.] 구체적인 공인된 내용은 아직도 미궁 속에 빠졌지만 1990년 삼성종합건설로부터 11헥타르에 달하는 현 학교용지를 매입하고, 교단 연혁에 따르면 같은 해(1990년)에 예장 브니엘 총회에서 신학대 설립을 결의하였으므로[* 당연히 1990년은 대학설립 준칙주의 이전이었고 4년제 학부과정 대학을 반드시 설립해야 대학원 설립인가가 나오던 시절이다. 학부 과정이 없는 [[대학원대학교]]는 못해도 1992년 11월 이후에서야 언급되었으며 1996년에서야 확정되었다.] 결국 학교 이전의 주된 목적은 학교 이전사업에서 얻는 차익으로 신학대 설립을 노렸음이 가장 유력해 보인다. 실제로 브니엘학원의 먼 친척뻘 되는 [[마산]] [[창신고등학교|창신 중고교]]를 운영하는 창신학원도 브니엘학원과 비슷한 시기에 이러한 방법으로 학교 이전사업에서 차익을 얻어 1990년대 초반에 [[창신대학교|창신대]]를 설립했다.[* [[창신대학교|창신대]]는 원래 창신 중고교와 같은 캠퍼스에 있다가 창신대가 성장하면서 기존 창신대 부지만 따로 팔고 2003년에 이전했다.] 그 외에도 당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학재단들이 중고교를 먼저 설립해서 실적을 만든 다음에 추가로 학교설립 자금을 마련하거나 중고교를 이전한 차익으로 대학을 설립하였음을 생각한다면... 당시에는 이게 사립학교 재단 성장 테크트리의 정석이었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은 대학 수요가 폭증한 데다 1971년생 기준으로는 한 해에 100만명 정도가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나 대학 입학 정원은 20만 명에 불과했을 정도로 대학 진학 경쟁률이 치열하던 시절이라 대학교 사업이 유망사업으로 평가받았다. 오히려 당시에는 대학 입시에 실패한 재수 낭인이 사회적으로 크나큰 문제가 되었을 정도였다. 브니엘학원 측에서는 이후 간호학과ㆍ사회복지학과ㆍ예체능 계열 학과ㆍCCM학과 등 다른 학과를 설립하여 4년제 종합대학으로 승격하는 개신교 미션스쿨의 정석 테크트리를 타면 학교 이전 사업의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다고 판단했거나 대학이 생기면 일대에 상권이 형성되고 시내버스 노선이 딸려와서 중고교의 등하교 문제도 같이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높다. 근처에 있는 [[부산가톨릭대학교|부산가대]]와 [[지산고등학교(부산)|지산고]] 역시 동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1990년대 초반 가톨릭 신학대학으로 4년제 대학을 시작하고 1990년대 중반 신학대학원을 설립하고 1990년대 후반에 기존의 2년제 지산간호전문대학을 통폐합하여 4년제 종합대학으로 승격하는 비슷한 과정을 밟았다. 지산고도 신설학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영도]]에 있던 [[대양중학교|대양중]] 이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학교보다는 고등학교 운영이 더 낫다고 판단하여 대양중을 폐교하고 교직원들을 그대로 데려와 지산고를 신설하는 우회적인 방법을 썼다. 다만 이쪽은 기반이 튼실한 [[학교법인 성모학원|가톨릭 재단]]이라 이전 과정에서 차익을 크게 따질 이유도 없었고, 당연히 귀찮게 꼼수를 부리기보다는 1980년대의 FM대로 학교 이전(지산간호전문대학, 대양중→지산고)을 추진하였다. 재단이 튼실하고 FM 루트를 밟으니 아무런 말썽 없이 굉장히 매끄럽게 완료되었던 것이다. 브니엘학원이 이전을 계획하던 1980년대 후반 복천동에 있었던 동래학원([[동래여자중학교]]ㆍ[[동래여자고등학교]])이 이전하면서 그 자리에 복천동 우성 베스토피아 아파트가 들어섰는데 복천동 우성 베스토피아 아파트의 분양가는 당시 부산 시내에서 꽤나 고가에 속하였으며 성공적으로 분양되었다. 동래학원 재단도 학교 이전사업으로 돈방석에 앉은 건 덤. 브니엘학원 입장에서는 동래학원 이전사업의 성공을 보면서 제대로 배가 아팠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브니엘재단이 계획한 신학대학은 부산에서 마지막으로 개교하는 사립대가 될 뻔했다고 한다. 부산에서 4년제 대학 개교는 1992년 [[동서대학교|동서대]]가 마지막이었고 2년제 전문대학 개교는 1994년 [[부산예술대학교|부산예대]]가 마지막이었다. 1996년 동명정보대학이 개교하기는 했으나 이 학교는 기존의 동명전문대학이라는 전문대를 기반으로 추가로 4년제 대학을 설립하였고 이후에 [[동명대학교|동명대]]로 통폐합하여 도로 1979년 개교가 되었다. 1999년 이후 정규 대학으로 개교 예정이었던 브니엘 신학대학은 부산 지역 2년제 전문대학, 4년제 대학교, 대학원대학교 모두 통틀어 부산 최후 타이틀을 딸 수밖에 없었다. 또 브니엘 신학대학 개교 시도가 무산된 이후에는 [[1997년 외환 위기]]로 [[부경대학교|부경대]] 같은 등록금이 저렴한 국립대가 크게 각광받으면서 부산에서 사립대학에 대한 선호도가 급추락하고 입결도 많이 내려가면서 다른 사립대학 설립 시도가 전무하다. 2013년에 대학설립 준칙주의도 폐지되었으므로 브니엘 신학대가 정규 대학교로 설립될 일은 이제는 없을 것이다. 교육부가 [[이홍하]] 계열 대학 사태, 대학 통폐합 문제로도 골머리를 앓으니 더 이상 대학 설립 인가를 내줄지.... 오히려 교육부는 퇴출할 대학을 찾으러 다닌다고 혈안이 된 판이다. 2018년에 나온 기사에 따르면 브니엘중고교는 브니엘 신학대학을 설립하기 위한 밑천이자 준비단계였으며 브니엘학원 이전은 브니엘 신학대 설립인가를 위한 요건을 마련하려는 목적이었음이 밝혀졌다.[[http://www.koreac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4|#]] 이 기사의 "신학교 설립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준비(대학설립 준거주의)하는 단계에서 교단이 형성(1986년)되었다", "신학교는 많은 것을 갖추고(대학설립 준거주의) 시작하려다 보니 늦어졌다" 라고 설명하는 구절에서 브니엘학원 이전을 추진한 이유를 알 수 있다. 또 1970년대 후반 브니엘중고교가 토곡의 예전 부산과학고 부지로 이전을 추진했다가 무산된 이유와 1988~89년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지금의 답이 없는 부지로 위치를 바꾼 이유도 엿볼 수 있다. 교단이 형성되기 이전부터 브니엘 신학대학 설립을 추진했으므로 브니엘 신학대학 설립은 아무리 늦어도 1986년 이전부터 추진되었다는 사실도 이 기사에서 알 수 있다. 국가기록원에 있는 자료에 따르면 1978년부터 중고교 이전을 추진했으므로 1978-86년 사이에 신학대학 설립을 추진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재단의 최종목표는 신학대 설립이었다.''' 브니엘 총회 홈페이지에서 브니엘학원 이전 사업과 브니엘 신학대학 설립 사업을 연계해서 표현하는 것만 봐도 확인 사살이다. 브니엘 구 재단이 이전 과정에서 폐교될 처지에 놓인 [[브니엘중학교]]를 아무렇지 않게 폐교한 것도 진짜 목적은 신학대였기 때문이다. 연산동이나 거제동 일대는 일반계 고등학교가 부족하지만 금정구에는 일반계가 남아도는데 금정구로 학교를 이전한다니 일반적인 상식을 크게 벗어났으며 인근에 [[지산고등학교(부산)|지산고]]ㆍ[[남산고등학교|남산고]]ㆍ[[부산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부산사대부고]]ㆍ[[부산용인고등학교|용인고]] 같은 만만치 않은 상대가 있는 만큼 학교 이전 과정에서 자칫하면 [[동래고등학교|동래고]], [[동인고등학교|동인고]]와 형성된 삼파전 구도를 깨뜨리고 명문으로 성장한 [[브니엘고등학교|브니엘고]]를 망칠 수 있음을 충분히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브니엘 신학대 설립만 성공하면 그런 것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브니엘 신학대 설립만 성사되면 [[부산가톨릭대학교|부산가대]]처럼 이후에 4년제 신학대학에서 4년제 종합대학으로 성장하고 가능성이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추가로 고신대 처럼 [[의치한]]이나 [[약학대학]]까지 유치해서 재단의 지갑 노릇을 한다면 [[브니엘고등학교|브니엘고]]를 비롯한 형제 학교들을 먹여살려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그네들이 금정구로 이전한 이후에는 전통적인 라이벌인 [[동인고등학교|동인고]]나 [[동래고등학교|동래고]]가 아니라 [[지산고등학교(부산)|지산고]], 지산간호보건전문대, [[부산가톨릭대학교|부산가대]] 같은 성모학원 계열 학교들을 계속 저격했음으로 미루어 보건대 학교 자체는 [[고신대학교]]를 벤치마킹하면서도 경쟁 타겟을 성모학원 계열로 잡은 듯하다.[* 두 학교는 2000년을 전후하여 통폐합되었다.] 브니엘 구 재단은 2010년대 들어 인가받지 못한 브니엘 신학교를 이전하여 인가받은 브니엘 신학대를 다시 설립하려는 듯했다. 정규대학은 2013년 이후 대학설립 준칙주의가 폐지된 만큼 대통령과 교육부장관이 설립 승인을 해 줄지는 의문이다. 학부과정을 제외한 [[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하려고 해도 정부가 2013년 말에 수익용 자산 기준을 40억에서 100억으로 2배 이상 상향하여 어지간한 자금력으로는 설립인가를 받을 생각 따위는 꿈도 꾸지 말라고 표방한 셈이므로 안 그래도 재정적 여유가 없는 브니엘 구 재단이 정규 신학대 인가를 받을 가능성은....[* 경향교회가 운영하던 고려신학교→[[제네바신학대학원대학교]]([[서울제일대학원대학교]] 인수)처럼 기존에 존재하던 대학을 인수하여 인가를 받는 우회적인 수단도 있다. 하지만 구 재단이 브니엘고를 운영하면서 보여준 모습과 이후에 브니엘고 정상화에 계속 발목을 잡던 모습을 생각하면 과연 교육부와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인수를 승인할지도 의문이다. 경향교회는 경복여상과 경복여고를 운영하면서 학교경영에 있어서는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적이 없었다. 브니엘 구 재단이 우회적으로 대학 인수에 나선다면 [[한려대학교|한려대]]나 [[신경대학교|신경대]]가 물망에 오를 수는 있지만 교육부와 사학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야 하는 만큼 가능성은 낮다. 그리고 한려대학교는 결국 폐교되었고 신경대학교는 타 재단에 인수하면서 이들 학교를 브니엘 구 재단이 인수할 가능성은 그냥 없어져 버렸다. 재미난 사실이지만 경향교회도 한때는 브니엘 학원 처럼 고신 교단에 소속되었다가 독자적인 교단으로 독립하였다.] 그리고 어찌어찌하여 자금을 마련한다고 해도 학교경영계획이나 교육과정, 재정운영 계획 등 정성적인 측면도 엄격하게 평가를 받아야 하고 결정적으로 대통령과 교육부장관이 설립을 불허하면 그걸로 끝이며 설립인가가 나올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물론 대한민국의 대다수 사학재단이 중고교를 먼저 설립하고 성장하면 그것을 바탕으로 대학을 설립하는 테크트리가 정석이지만.... 단적으로 [[동의대학교|동의대]]만 해도 학교법인의 뿌리는 [[동의중학교|동의중]]과 [[동의공업고등학교|동의공고]]이며, [[경성대학교|경성대]]는 뿌리가 [[남성여자중학교|남성여중]]과 [[남성여자고등학교|남성여고]], [[부산외국어대학교|부산외대]]는 뿌리가 성지고등기술학교(현 [[성지고등학교(부산)|성지고]]), [[영산대학교|영산대]]는 뿌리가 성심여자상업고(현 성심보건고)다. 다만 2020년대 이후에는 더 이상 소식이 없는걸로 봐서 구재단의 브니엘 신학대 설립은 신설이던 타 대학을 인수하는 우회책이든 간에 완전히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 교단 앞으로 신학대를 설립하려고 기를 쓰던 설립자도 90세를 넘겨 오늘내일하는 상황이다. 결론을 요약하자. 브니엘 교단[* 일단 브니엘학원의 설립자가 이 교단의 초대 총회장이었다.]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당시 [[3저 호황]]과 [[노태우 정부]]의 대학증설 분위기를 타고 미션스쿨 확장의 정석 테크트리를 타고 싶어했으나 그 과정에서 꼼수를 잘못 써서 건설사 보증, 진입로 등 문제가 생겼고 몽니를 부리다가 부산시가 빡치는 바람에 이전 사업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기는커녕 거하게 역관광을 당했으며 그 와중에 IMF 사태까지 겹치자 카운터를 맞아서 부도가 나 버린 데다 [[해운대 신시가지]] 학군의 급부상과 [[LG메트로시티]]를 앞세워 급부상한 [[남구(부산)|남구]] 학군에도 제대로 얻어맞았고 그 와중에 지방 최강 학군으로 부산 동래3구([[동래구]], [[금정구]], [[연제구]]) 4학군이 [[대구광역시]] [[수성구]]에 추월당하면서 최강자 자리를 내주고 수요예측 및 이전사업 소요비용 계산도 실패하여 교단 산하의 멀쩡히 잘 돌아가거나 잘 나가던 학교들까지 하루아침에 [[브니엘중학교|요단강을 건너거나]] [[브니엘고등학교|망쳐 버렸다]]. 사실 위에 언급한 브니엘신학대학원대학교가 예정대로 설립되었더라도 지역에서는 영 좋지 않은 취급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단적으로 브니엘신학대학원대학교보다 훨씬 조건도 좋고 재단이나 종교에 대한 인식도 지역사회에서 훨씬 좋은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및 신학대학원도 지원자수 미달과 학생들의 수학능력 저조로 인하여 교구에서 자진해서 폐교했을 정도고 같은 [[개신교]] [[장로회]] 계통이기는 해도 메이저 교단인 [[예장통합]] 계통의 김해 소재 [[부산장신대학교]]도 비슷한 이유로 경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심지어 [[예장고신]]의 유일한 대학교인 [[고신대학교]]조차도 보건, 의료계통을 제외하고는 2020년대 이후 지원자수 미달로 재정난을 겪고 있는데[[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3929|#]] 안그래도 범어사의 존재로 인하여 불교가 워낙 강세고 개신교와 [[가톨릭]]의 세가 약한 [[부울경]]이라지만 그러한 부울경에서도 오래전부터 가톨릭 신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서 비교적 가톨릭이 강세다 보니 개신교가 타 지역 대비 힘을 못 쓰는 금정구에서 마이너 개신교 교단[* 예장 브니엘은 본진인 부산에서조차도 교세가 하도 미미해서 4%조차도 채 되지 못해 통계에도 잘 안 잡히는 마이너 중의 마이너 교단이다.[[https://www.goodnews1.com/news/articleView.html?idxno=64963|#]]]의 신학대학원이 좋은 취급을 받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고 나중에 추가로 학부 과정도 설립해서 4년제 대학교로 개편되었다면 빈약한 재단과 낮은 입결로 인하여 아예 지역의 초중고등학생들에게도 오히려 한 번 들으면 잊기 힘들 정도의 특이한 교명으로 인하여 속칭 [[지잡대]]의 대명사로 곧잘 조롱거리가 되는 대학교가 되거나 [[동부산대학교]], [[한국국제대학교]]와 비슷한 전철을 밟았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